5그러나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풀 한 포기 없는 아덴의 바위산에 대한 염증, 깨끗하게 마실 물이 절실히 그립다는 내용의 편지 여러 통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 내용이 오너 피에르 베르디에게 알려지면서 하라르에 지사가 설치되었다. 랭보는 재계약 연장을 요청받지만 무기 밀매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891년 4월 관절염과 이름 모를 몹쓸 병을 견디지 못하고 하라르를 떠나 마르세이유로 향한다. 같은 해 11월, 3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하라르를 떠난 후 그가 머물렀던 이 아름다운 집은, 1898년 새롭게 랭보하우스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네스코 기금으로 근근이 유지되어왔던 랭보하우스는 더 이상 기금부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커피나무를 뒤로하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랭보의 사진 앞에서 공식안내원이 설명한다.
“랭보는 하라르에 도착하자마자 소말리아 사람들이 이끄는 낙타 카라반을 이용해 많은 양의 커피를 아덴에 팝니다. 커피와 함께 상아도 팔았습니다. 하라르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 사업은 그만두었지만 늘 하라르의 커피를 즐겼습니다. 하라르에서는 자신의 커피 가든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 자주 하라르 커피의 매력에 대해 자세히 썼습니다.”
고즈넉한 느낌이다. 시간이 그때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꼭대기로 올라오자 골목길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상상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방이 창으로 뚫려 시야가 탁 트여있다. 건조하면서도 초록이 스며있었다. 멀리 무수히 솟아있는 이탈리안 무슬림의 코발트빛 첨탑이 인상적이다. 낙타 등에 실려 사막을 건너 홍해를 건넜을 랭보의 커피사랑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속내를 알 수 없다. 이것저것에 관심을 기울였던 정황들을 살펴보면 그에게 커피는 그저 삶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너무 심한 예단일까? 아랍인들은 하라르 커피를 시다모, 예르가체프보다 더 좋아한다고 한다. 하라르에 와서야 비로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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